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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조각
Spill Lute
2026. 10. 30. 03:41
파도의 조각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Yeah. You came out fast today."
(그래. 오늘은 빨리 나왔네.)
(그래. 오늘은 빨리 나왔네.)
목소리는 조금 잠겨 있었지만 일요일처럼 가라앉아 있지는 않았다. 그는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었던 손을 꺼내 부드러운 남색 천 주머니를 스필의 눈앞에 불쑥 내밀었다. 주머니 매듭을 풀자 수요일까지 압수해 갔던 매끈한 흰색 조개껍데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겉보기에는 일요일 오후 틸베이 해안에서 쥐여주었던 그대로였다. 하지만 로미오가 그 껍데기의 안쪽을 보여주자 진주빛 표면 위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은빛 각인 회로가 촘촘하고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Romeo
"Look closely. I didn't just use any cheap recording pattern. Tap the center twice with a tiny bit of mana, and it plays for thirty minutes before shutting off by itself."
(잘 봐. 싸구려 녹음 술식 같은 거 대충 쓴 거 아니야. 가운데를 마나 조금만 섞어서 두 번 톡톡 치면 삼십 분 동안 소리 나다가 알아서 꺼져.)
(잘 봐. 싸구려 녹음 술식 같은 거 대충 쓴 거 아니야. 가운데를 마나 조금만 섞어서 두 번 톡톡 치면 삼십 분 동안 소리 나다가 알아서 꺼져.)
정밀 각인기 앞에서 두 번이나 회로를 태워 먹었던 고생담은 쏙 빼놓고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그는 시범을 보여주듯 자기 검지 끝으로 조개 안쪽 한가운데를 가볍게 두 번 두드렸다.
작은 마나 파동이 은빛 회로를 따라 흐르자 조개껍데기 안에서 대번에 청량한 물소리가 흘러나왔다. 솔트포드 제3부두 끝자락의 밤바다가 방파제 돌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소리였다. 루멘홀드 정문 앞의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위로 진짜 바다의 호흡이 겹쳐졌다.
로미오는 소리가 나는 조개를 스필의 손바닥 위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았다.
Romeo
"It's the actual tide from Pier Three last night. Now you don't have an excuse to make that face when you wake up in the morning."
(어젯밤 제3부두에서 직접 따온 진짜 파도 소리야. 이제 아침에 일어날 때 그런 표정 지을 핑계 없어진 거다.)
(어젯밤 제3부두에서 직접 따온 진짜 파도 소리야. 이제 아침에 일어날 때 그런 표정 지을 핑계 없어진 거다.)
스필은 손바닥에 올려진 것을 제 귓가에 가져다 댔다. 눈꺼풀이 느긋한 속도로 감겼다. 어두워진 세상 속에서 파도 소리가 밀려왔다. 그게 전부가 되기 전에 여름이 나뭇잎을 스치는 소리가 뒤이어 온다. 어우러졌다. 그래서 그냥 계속 들었다.
오 분이었다.
로미오는 그동안 한 번도 재촉하지 않았다. 조개를 귓가에 댄 채 눈을 감은 얼굴이 너무 조용해서, 괜히 말을 얹었다가는 그 안의 파도가 깨질 것 같았다. 정문 너머 가로수 잎이 여름 바람에 사각거렸고 조개 속에서는 제3부두의 밤바다가 방파제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졌다. 언덕 위 숲과 항구 끝 바다가 한 사람의 귓바퀴 안에서 섞이고 있었다.
그는 돌담에 기대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서 있었다. 팔짱을 꼈다가 풀었고, 다시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아직 덜 마른 앞머리에서 물기가 한 방울 떨어져 셔츠 깃을 적셨다. 노을은 그사이 한 뼘쯤 더 기울어 스필의 흰 린넨 원피스 어깨 위에 살구빛으로 번져 있었다.
그러다 금빛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왔다.
Spill
"고마워, 로미오."
"엄청, 엄청나게... 엄청나게 귀한 선물이야."
스필이 무언가 더 말하려다 멈추었다.
고맙다는 말까지는 버틸 만했다. 늘 듣던 담담한 어조였으니까. 그런데 그 뒤에 무언가를 더 꺼내려다 삼키는 짧은 정적이 있었고, 다음에 나온 말이 엄청, 엄청나게, 엄청나게였다.
같은 단어를 세 번이나. 평소엔 형용사 하나 붙이는 것도 아까워하는 애가.
목덜미부터 열이 훅 치밀었다. 로미오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옆으로 꺾었지만 이미 늦었다. 귓바퀴가 노을보다 먼저 새빨갛게 익어가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두 번 태워 먹은 회로, 자정까지 정밀 각인기 렌즈를 들여다보느라 시큰거리던 눈. 그 전부가 단어 세 개에 한꺼번에 값을 치르고 돌아온 기분이었다.
Romeo
"...It's a shell. A shell I picked up off the ground. Don't go making it sound like a national treasure."
(......조개야. 바닥에서 주운 조개라고. 무슨 국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마.)
(......조개야. 바닥에서 주운 조개라고. 무슨 국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마.)
퉁명스럽게 내뱉은 말끝이 영 힘이 없었다. 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젖은 앞머리를 손바닥으로 거칠게 쓸어 넘겼다. 그리고 스필이 방금 삼킨 말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일요일 전차 안에서 들었던 안 돼라는 두 글자가 그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말하다 만 거면 지금은 거기까지인 거다. 억지로 꺼내면 또 입 닫고 수평선이나 보겠지.
Romeo
"And it's not like the engraving was hard or anything. I just didn't sleep because I didn't feel like it."
(그리고 각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야. 그냥 자기 싫어서 안 잔 거지.)
(그리고 각인이 어려웠던 것도 아니야. 그냥 자기 싫어서 안 잔 거지.)
Spill
"그냥 조개 아냐."
로미오는 헛기침을 하며 슬쩍 시선을 피했다. 조금 전 식어가던 귓불이 다시 화끈거렸다. 솔트포드 연구실에서 밤새도록 정밀 각인기 렌즈를 들여다보느라 빠졌던 진이 방금 그 한마디에 전부 보상을 받고도 남았다. 입꼬리가 자꾸만 제멋대로 올라가려는 걸 어금니를 꽉 깨물어 참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