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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한 오닉스 터너
Spill Lute
2026. 10. 31. 05:10
불쌍한 오닉스 터너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제1온실의 천장은 까마득하게 높았다. 수백 장의 유리판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한낮의 햇빛이 거대한 양치식물과 야자수 잎사귀에 걸려 초록빛 그림자로 부서졌다. 바닥에 깔린 붉은 벽돌 길 가장자리로는 좁은 수로가 졸졸 흐르고 있었고, 수로 바닥에 새겨진 보온 각인이 물속에서 옅은 주황빛으로 맥동했다.
로미오는 문이 닫히자마자 걸음을 늦춰 스필의 바로 옆에 섰다. 높은 천장 아래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와 나뭇잎 스치는 소리만 조용하게 울렸다. 스필의 연녹색 치마가 온실의 짙은 수풀 색깔과 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원래부터 이 자리에 있던 것처럼 보였다.
그는 괜히 종이 지도를 한 번 펼쳤다가 접어 뒷주머니에 꽂았다. 사실 지도는 볼 필요도 없었다. 오기 전에 이미 구조도를 다 외워뒀으니까.
Romeo
"There are three domes. This one's tropical, the middle one's got a pond with water plants, and the last one is highland flowers. Where first?"
(돔이 세 개야. 여긴 열대림이고, 가운데는 수생 식물이 있는 연못이고, 마지막은 고산지대 꽃들이래. 어디부터 볼래?)
(돔이 세 개야. 여긴 열대림이고, 가운데는 수생 식물이 있는 연못이고, 마지막은 고산지대 꽃들이래. 어디부터 볼래?)
Spill
"순서대로 볼래. 오늘... 시간 많으니까."
시간이 많다는 말이 온실의 더운 습기보다 먼저 귓속을 간질였다.
로미오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사흘 동안 연락 한 통 없던 주제에 만나자마자 온종일 같이 있어 줄 것처럼 구니 당최 장단을 맞출 수가 없다. 그래도 싫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해안 방어 실습 내내 쌓였던 피로가 단숨에 날아갈 만큼 기분이 좋았다.
그는 스필의 느린 걸음에 맞춰 보폭을 반으로 줄였다. 붉은 벽돌 바닥 위로 넓적한 야자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천장 철골 구석에 매달린 낡은 스피커에서 녹음된 열대 새소리가 지지직거리는 잡음과 함께 흘러나왔다.
Spill
"로미오, 온실은 안 좋아할 것 같은데. 이런 데를 알았어?"
그런데 툭 던져진 질문에 로미오의 어깨가 살짝 움츠러들었다.
온실을 안 좋아할 것 같다니. 정답이었다. 가만히 서서 풀떼기나 구경하는 취미 따위 로미오 머로의 인생에는 단 한 줄도 없었다. 일요일 전차에서 스필이 루멘홀드의 땅과 숲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않았어도 평생 근처에 얼씬도 안 했을 장소였다. 수요일 아침에 오닉스 터너의 멱살을 반쯤 붙잡고 조용하고 풀 많은 데를 당장 불라고 닦달했던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내가 널 데려오려고 추리소설 동아리 회장까지 털었다고 말할 수는 없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