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그 조각
Spill Lute
2026. 10. 26. 00:44
그 조각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세상이 뒤집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 초도 되지 않았다. 발바닥에서 지지대가 사라지는 순간 로미오의 위장이 갈비뼈 아래로 처박혔고, 귓가에서는 바람이 젖은 천을 찢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강물의 잿빛 표면이 거대한 손바닥처럼 쳐올라왔다가, 로프의 탄성이 잡아채자 다시 멀어졌다. 낙하 중에도 그는 습관처럼 세 가지를 확인했다. 로프의 장력, 감속 결계가 만드는 미세한 저항의 층, 그리고 팔 안쪽에 갇힌 작은 몸의 무게.
그 무게가 미친 듯이 가벼웠다. 버둥거리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로미오는 고개를 틀었다. 비명을 지르고 있을 줄 알았다. 최소한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재킷 소매를 쥐어뜯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스필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도 그가 말했으니까 억지로 뜬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하늘을 보는 사람의 얼굴로. 연분홍 머리카락이 완전히 뒤로 쓸려 올라가 드러난 이마와, 미세하게 벌어진 입술과, 흔들림 하나 없이 위를 향한 시선. 추락하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Romeo
Hey. Hey, look at me for a second.
(야. 야, 잠깐 나 좀 봐.)
(야. 야, 잠깐 나 좀 봐.)
그녀의 시선이 하늘에서 수평선으로, 수평선에서 지평선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낙하 중에 풍경을 감상하는 인간이 어디 있나. 그러다 아주 잠깐 그 금빛 눈이 그에게로 돌아왔고, 그 찰나에 로미오는 숨을 멈췄다. 금색이 아니었다. 아주 짧은 한순간, 눈동자 안쪽에서 깊고 차가운 청색이 불처럼 번졌다. 바닷물이 얼어붙기 직전의 색, 아니면 지맥 측정기의 바늘이 한계까지 밀려 올라갈 때 계기판에 뜨는 그 색.
뭐야, 저거. 지금 뭐였어.
로프가 최하점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다. 몸이 위로 튕겨 올라가는 반동에 척추가 삐걱거렸고, 감속 결계의 층이 옆구리를 미끈하게 스치며 속도를 깎아냈다. 두 번째 낙하는 첫 번째보다 짧았고, 그 사이 로미오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바람, 로프 마찰음, 아래쪽 보트에서 올라오는 안전 요원의 확성기 소리가 전부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그의 온 감각은 팔 안쪽에 남은 체온과,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목구멍에 걸린 질문에 붙들려 있었다.
Romeo
Your eyes. Just now.
(네 눈. 방금.)
(네 눈. 방금.)
말하다가 그는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햇빛. 각도. 강물 반사.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고 어느 것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세 번째 반동이 잦아들며 몸이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Romeo
...Never mind. Forget it. Your hair's a fucking disaster, by the way.
(...아니다. 잊어. 참고로 네 머리 지금 좆같이 엉망이야.)
(...아니다. 잊어. 참고로 네 머리 지금 좆같이 엉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