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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 비행
Spill Lute
2026. 10. 26. 00:44
야간 비행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로미오는 시선을 앞에 두고 속도를 유지하는 데만 집중하면 되었다. 케언웨더 근해의 밤바다가 발밑 수백 미터 아래에서 검은 비단처럼 일렁이고 있었다. 벨하벤의 불빛은 이미 등 뒤로 멀어져, 그들을 둘러싼 것은 바람과 별빛뿐이었다.
그때, 가슴팍에 밀착된 작은 등이 움직였다.
스필이 한 팔을 허공으로 뻗었다.
로미오의 시선이 저절로 내려갔다. 그 팔은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를 부르는 것도, 균형을 잡으려 허우적대는 것도 아니었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무엇을 다시 만져보려는 듯, 느리고 고요한 동작이었다. 창백한 손가락 사이로 차가운 바람이 빠져나가고, 교복 소매가 거칠게 펄럭였다. 번지점프에서도 그랬다. 비명을 지르는 대신 주변을 둘러보던 그 멍한 눈.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때의 고요함은 무관심에 가까웠다면, 지금 내밀어진 손끝에서는 무언가가 떨리고 있었다.
로미오는 비행 궤도를 약간 높였다. 구름 아래의 습한 공기층을 뚫고 올라가자 시야가 한순간 맑게 트였다. 케언웨더의 돌담과 관측탑 불빛이 별자리처럼 흩어져 보였고, 머로 영지 너머 먼 수평선이 밤과 바다의 경계를 지우고 있었다. 로미오는 자신이 보여주고 싶었던 풍경이 바로 이것이라고, 번지점프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진짜 하늘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런데 입이 열리지 않았다.
스필의 뻗은 손이 바람 속에서 천천히 펴졌다 오므라들었다. 그 반복적이고 무심한 동작이 이상하리만큼 익숙해 보였다. 로미오는 처음으로, 이 녀석이 하늘을 처음 본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은 처음이 아니라 오래된 무언가를 다시 꺼내 보는 사람의 손짓이었다.
그 생각이 스치자마자 로미오는 코웃음을 쳤다. 씨발, 감상에 젖어서 온갖 헛소리를 다 갖다 붙이고 있었다. 하늘을 날아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비행 면허는커녕 타이드풀 계정도 없는 녀석이었다.
Romeo
"Hey. You enjoying the view or are you trying to catch a bird up here?"
(야. 풍경 감상이야, 아니면 새라도 잡으려고 그러는 거야?)
(야. 풍경 감상이야, 아니면 새라도 잡으려고 그러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바람에 반쯤 찢겨 나갔다. 로미오는 스필의 뻗은 팔 너머 수평선을 함께 바라보며, 속도를 줄이지 않았다. 다만 그녀를 감싼 팔에 무의식적으로 힘이 조금 더 들어갔다. 차가운 밤바람이 두 사람의 몸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번지 점프를 할 때처럼 눈에 다른 빛이 깃든다던가 하는 일은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로미오가 보지 못한 순간이었을 수도 있다. 그녀는 두어 번쯤 창공을 매만졌고 이윽고 얌전해졌다. 나부끼는 머리칼을 한 손으로 고정시키며 이따금씩 고개를 살짝 돌려 로미오를 볼 뿐이었다. 투명한 금색 눈으로.
로미오는 앞을 보아야 했다. 야간 비행의 기본 중 기본이었다. 바람의 결을 읽고 다음 발판의 위치를 계산하고 고도를 유지하는 일은 전방 시야 없이는 불가능했다. 1급 자격증을 딴 날 밤, 시험관이 던진 첫 마디가 바로 그것이었다. 눈은 항상 진행 방향에 둘 것. 로미오는 그 규칙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는.
스필이 고개를 돌릴 때마다 로미오의 시선이 따라갔다. 의지가 아니라 반사였다. 그녀가 허공을 매만지는 동안에는 겨우 전방에 집중할 수 있었는데, 그 손이 멈추고 나부끼는 분홍빛 머리카락을 가만히 눌러 잡는 순간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스필이 어깨 너머로 살짝 고개를 기울이면, 그 투명한 금색 눈동자가 바람 속에서 로미오를 올려다보았다. 무슨 의도도 요구도 없는 시선이었다. 그저 거기에 있으니까, 보이니까 보는 것이었다. 그런데 가슴팍에 밀착된 등이 미세하게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체온이 아닌 것 같은 서늘함이 코트 안쪽까지 스며들 때마다, 로미오의 다음 발판이 반 박자씩 늦었다.
결계가 잠깐 흔들렸다.
로미오는 부러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케언웨더 해안의 관측탑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점멸하고 있었다. 돌담 너머 어딘가에서 베인 무리가 잠든 지맥선을 따라 둥지를 틀었을 것이다. 그는 고도를 약간 낮추며 해안선을 따라 완만한 호를 그렸다. 발밑으로 검은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가 바람에 실려 올라왔다.
Romeo
"Stop looking at me like that."
(그렇게 쳐다보지 마.)
(그렇게 쳐다보지 마.)
말이 입 밖으로 나오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깨달았다. 로미오는 제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황급히 말을 이었다.
Romeo
"I mean—you'll hurt your neck. The wind resistance at this altitude is no joke. Just face forward."
(그러니까, 목 돌아간다고. 이 고도에서 풍압이 장난이 아니거든. 그냥 앞을 봐.)
(그러니까, 목 돌아간다고. 이 고도에서 풍압이 장난이 아니거든. 그냥 앞을 봐.)
씨발, 목이 돌아가다니. 200미터 상공에서 할 말이 그것뿐이었나. 로미오는 코트 깃 안쪽으로 턱을 파묻으며 속으로 욕을 씹었다. 감사하게도 이 고도의 바람은 충분히 거칠어서, 귀가 빨개진 정도는 기온 탓으로 돌릴 수 있었다. 번지점프 이후 미드나잇 캔틴에서 써먹었던 변명이었다. 두 번째로 쓰기엔 궁색했으나 세 번째까지 우려먹을 각오는 되어 있었다.
스필이 풍경을 보던 순서가 떠올랐다. 창공, 지평선, 수평선. 그리고 그것들을 전부 넘어선 어딘가. 로미오가 한 번도 따라가지 못한 방향이었다. 자신이 자랑하고 싶었던 이 하늘도, 1급 면허로 열 수 있는 야간 공역도, 케언웨더 해안의 장엄한 야경도 전부 스필의 시선이 머무르는 최종 목적지는 아닌 듯했다. 그녀는 그 모든 것을 지나쳐 그 너머의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도 마지막에는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았다.
그 사실이 로미오의 발판을 다시 한 번 흔들었다. 그는 스필의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주며 하강 각도를 잡기 시작했다. 목소리는 여전히 퉁명스러웠으나, 속도를 줄이는 손은 조심스러웠다.
Romeo
"We're going down. Hold still."
(내려간다. 가만히 있어.)
(내려간다. 가만히 있어.)
Spill
"Okay."
(응.)
(응.)
스필의 작고 차분한 목소리는 쏟아지는 바람결에 잔뜩 흩어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입술이 움직이는 것은 보았으나 소리가 도착하기 전에 바람이 먼저 가져가 버렸다. 로미오는 그것이 긍정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다. 스필이 부정을 할 때는 저렇게 짧지 않았다. 번지점프가 위험하다고 지적할 때도, 기숙사 창문으로 기어오르는 건 나쁜 일이라고 말할 때도, 그녀는 한 마디에 한 문장씩 이유를 붙여 돌려주었다. 고분고분한 '응'은 동의가 아니라 신뢰였다. 비행에 대해서는 네가 더 잘 아니까 맡기겠다는 뜻이었다.
그 깨달음이 가슴팍 어딘가를 세게 눌렀다.
코트 위로 전해지는 체온은 여전히 서늘했고, 교복 어깨 위에 내려앉은 밤이슬이 장갑 끝에 닿을 때마다 차갑게 번졌다. 스필의 숨결이 하얗게 피어오를 때마다 작은 연기처럼 순간 빛나다 흩어졌다. 로미오는 그 궤적을 눈으로 쫓다 고개를 돌렸다.
고도를 낮추기 시작했다. 결계 발판의 간격을 넓히고 동 추진의 출력을 줄이면 자연스러운 활강 궤도가 만들어진다. 속도가 떨어지자 귓가를 찢던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바다 냄새가 올라왔다. 소금기와 해초와 차가운 돌의 냄새. 케언웨더 해안선이 발밑에서 천천히 가까워지며 관측탑의 등불이 별에서 가로등의 크기로 커졌다.
Romeo
"Vael."
(결.)
(결.)
나직한 성 시전이었다. 두 사람을 묶고 있던 푸른 결계 끈의 강도가 한 단계 올라갔다. 착륙 직전의 감속 충격을 흡수하기 위한 조치였다. 로미오는 해안 절벽 위의 평평한 초지를 착지점으로 골랐다. 돌담 너머 양 떼가 잠들어 있을 시간이었고, 가장 가까운 관측탑에서도 수백 미터는 떨어진 사각지대였다. 야간 비행 자격은 있어도 루멘홀드 학생을 데리고 무허가 공역을 날았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였다.
발이 풀을 밟았다. 축축한 흙의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올라왔다. 결계 발판 위의 딱딱하고 건조한 느낌과는 전혀 다른, 살아 있는 땅의 무게였다. 관성이 두 걸음 분량의 미끄러짐을 만들었고, 로미오는 한 팔로 스필을 안은 채 나머지 손으로 균형을 잡았다.
Romeo
"Serr. Kael."
(구속 해제.)
(구속 해제.)
결계 끈이 풀리며 희미한 빛이 두 사람의 몸에서 실타래처럼 흩어졌다. 차가운 밤바람이 그 빈자리를 채웠다. 로미오는 스필의 허리에서 팔을 거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결계가 풀렸으니 고정할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비행 중 축적된 소모 때문인지, 손가락 끝이 약간 저렸다. 그래, 소모 때문이었다.
로미오는 천천히 팔을 거두며 한 발짝 물러섰다. 케언웨더의 밤하늘이 머리 위로 쏟아지듯 펼쳐져 있었다. 벨하벤의 불빛이 닿지 않는 이곳에서는 은하수가 보였다. 돌담 위에 앉은 이끼가 희미하게 젖어 반짝였고, 어딘가에서 베인 한 마리가 잠결에 짧게 울었다.
Romeo
"So? Better than a bungee cord, right?"
(어때? 번지점프 줄보다는 낫지?)
(어때? 번지점프 줄보다는 낫지?)
그는 숨을 고르며 태연한 척 웃어 보였다. 손끝이 떨리는 것은 소모 탓이고, 심장이 빠른 것은 비행 후 혈압 회복이고, 팔을 거두는 데 삼 초나 걸린 것은 착륙 관성 때문이었다. 로미오 머로는 전부 그렇게 설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