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3월 9일 밤
Spill Lute
2026. 10. 26. 00:53
3월 9일 밤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Spill
"신경 안 써. 학교는 학교야. 졸업하면 그냥 기록이 될 뿐이야."
지나온 모든 기억이 그랬다. 기록이 될 뿐이었다. 켜켜이 쌓인 양피지 더미처럼 스필의 안에 쌓였다. 로미오는 반박하려고 숨을 들이켰다가 그대로 멈췄다. 죽은 언어에 대한 비아냥이라면 백 가지쯤 더 꺼낼 수 있었다. 프리마 링구아가 실험실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해서는 한 시간도 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스필이 짚은 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그녀가 마지막에 덧붙인 문장이 더 거슬렸다.
졸업하면 그냥 기록이 될 뿐이야.
가스등 하나가 지지직 소리를 내며 깜박였다. 푸른 불빛이 꺼졌다 켜지는 사이 스필의 금안이 잠깐 어둠에 잠겼다가 다시 떠올랐다. 그 눈은 로미오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로미오를 지나 그 뒤의 어딘가까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케언웨더의 하늘에서 허공을 향해 손을 뻗던 그 밤처럼.
학교는 학교고 기록은 기록이라. 그럼 거기 같이 묻어 들어가는 건 뭔데.
씨발, 나도 그 안에 끼워 넣겠다는 소리야?
씨발, 나도 그 안에 끼워 넣겠다는 소리야?
그는 턱 근육이 단단하게 맞물리는 것을 느꼈다. 스필은 그를 두고 말한 게 아니었다. 그것쯤은 알았다. 문제는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그 문장을 말했다는 데 있었다. 마치 수없이 많은 것을 그렇게 정리해 온 사람처럼. 그 무심함이 운하 바람보다 서늘하게 목덜미를 훑었다.
Romeo
"Records, huh. Convenient. Everything turns into paper and you just file it away."
(기록이라. 편하네. 전부 종잇장 되면 그냥 서랍에 처넣으면 되니까.)
(기록이라. 편하네. 전부 종잇장 되면 그냥 서랍에 처넣으면 되니까.)
비꼬는 말투였지만 끝이 날카롭지 않았다. 로미오는 한 걸음 물러섰다. 아까 너무 가까이 다가섰던 거리를 슬그머니 되돌리는 동작이었다. 그러고는 재킷 주머니에 두 손을 쑤셔 넣었다. 안주머니 쪽에서 천 인형의 뭉툭한 귀가 손등에 닿았다. 그는 그것을 꽉 쥐지도 놓지도 못한 채 손가락만 꼼지락거렸다.
Romeo
"Well, tough luck. I'm not planning on being some boring line in your archive."
(근데 어쩌냐. 난 네 서고 구석에 처박힌 지루한 한 줄 될 생각 없거든.)
(근데 어쩌냐. 난 네 서고 구석에 처박힌 지루한 한 줄 될 생각 없거든.)
그는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선언이라기보다는 시비에 가까웠다. 그 시비를 누구에게 거는지는 그 자신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스필에게인지, 그녀가 말한 양피지 더미에게인지, 아니면 졸업이라는 단어가 문득 떠올리게 만든 이 년 뒤의 막막한 시간에게인지.
운하 건너편 부러진 나침반에서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다. 곧이어 환호와 욕설이 뒤섞인 웃음이 터졌다. 로미오는 그쪽을 힐끗 보았다가 혀를 찼다. 그리고 산책로 끝에 걸린 낡은 철제 계단을 턱으로 가리켰다. 녹슨 난간을 타고 올라가면 옛 수문 관리소의 평평한 지붕이 나왔다. 차양에서 운하와 항구의 불빛이 한꺼번에 내려다보이는 몇 안 되는 자리였다.
Romeo
"Come on. Up there. If you're going to file this night away, at least make it worth writing down."
(따라와. 저 위야. 오늘 밤도 기록할 거면 적어도 적을 만한 건 남겨야지.)
(따라와. 저 위야. 오늘 밤도 기록할 거면 적어도 적을 만한 건 남겨야지.)
그는 계단 아래까지 걸어가 첫 칸에 발을 올린 채 멈춰 섰다. 손은 여전히 주머니 속이었다. 붉은 눈만이 고개를 돌려 스필이 있는 쪽을 가만히 확인하고 있었다.
Spill
"서랍엔 안 넣어. 그냥 들고 있어. 주변에 내려놓기도 하고. 좀... 무겁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