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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cm짜리 멍

Spill Lute 2026. 10. 26. 00:56
187cm짜리 멍이 어딨는데
Romeo merrow X Spill Rute
반만 가져가겠다고 했다. 로미오는 그 기술의 이름과 원리를 알고 있었다. 그가 얼어붙은 것은 찰나였다. 다음 순간, 그의 손이 스필의 손목을 덮쳐 잡았다.
Romeo
"Don't."
(하지 마.)
짧고 단호했다. 허세도, 도발도, 농담의 여지도 없는 한 마디였다. 그는 스필의 손목을 잡은 채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빛의 구체가 두 사람 사이에서 흔들려, 금빛 눈동자 위로 그림자가 지나갔다.
Romeo
"You pass out on me again and I'll have to carry you down nine flights of broken stairs with a fucked-up back. Think about the logistics before you play hero."
(또 내 앞에서 기절하면 등판 나간 채로 부서진 계단 아홉 층을 널 업고 내려가야 해. 영웅 놀이하기 전에 생각해.)
입에서는 계산적인 소리가 나왔지만, 손목을 잡은 손가락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항만선에서 창문에 머리를 찧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잠수 뒤 그녀가 자신의 소모를 나눠 가져갔기 때문이라는 의심을 아직도 확인하지 못한 채 품고 있었다. 그때도 스필은 아무 말 없이 쓰러지듯 잠들었다. 제 몸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지독하게도 없는 사람이었다.
로미오는 잡은 손목을 놓지 않았다. 놓으면 그녀가 즉시 해버릴 것 같았다.
Romeo
"It's bruises. Just bruises. I don't need you collapsing in a condemned lighthouse over some bruises."
(멍이라고. 그냥 멍이야. 멍 좀 든 거 가지고 네가 폐건물에서 쓰러지는 건 필요 없어.)
Spill
"......."
"이거 빚이야."
그냥 저질러버릴까 망설이던 그 찰나의 기색을 로미오는 기민하게 포착했다. 손목을 쥔 손에 힘이 더 들어갈 뻔했다. 스필이 끝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면,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뒤로 물러나 거리를 벌렸을 것이다. 제 신경망을 내어주어 그녀를 아프게 하느니 등판이 통째로 으스러지는 편이 나았다. 억지로 틀어쥐고 있던 숨이 비로소 턱 끝에서 느슨하게 풀렸다.
하지만 이어진 한마디가 다시 숨통을 틀어막았다.
이거 빚이야.
그 단어가 먼지 낀 공기 중에 툭 떨어졌다. 계산서나 차용증이라도 내미는 듯한 덤덤한 어조였다. 로미오는 잡고 있던 손목에서 손을 뗐다. 손끝에 남아 있던 스필의 맥박과 체온이 서늘한 바닷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빚이라니.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는 걸 몸으로 받아내고 등판이 갈려나간 대가가 고작 장부상의 숫자 하나란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잇새로 샜다.
그는 풀었던 가림을 다시 거칠게 세웠다. 감응의 통로가 닫히며 드러나 있던 둔통의 지도가 단단한 차폐막 뒤로 숨어들었다. 보이지 않게 감춘다고 해서 쑤셔대는 타박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저 금빛 눈동자 앞에 제 치부를 날것으로 펼쳐놓는 굴욕은 멈출 수 있었다.
Romeo
"Debt? You think I caught you so I could put it on a tab?"
(빚? 내가 외상 장부에 달아두려고 널 받아낸 줄 알아?)
그는 찢어진 가죽 재킷 소매를 툭툭 털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통증이 등줄기를 갉아먹었지만, 얼굴에는 보란 듯이 삐딱한 빈정거림을 걸어두었다. 입꼬리를 한쪽만 끌어올린 채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Romeo
"You’re terrible at paying them back anyway. Last time I bought you dinner, you thought coffee was enough to clear the balance. If you're going to call this a debt, you're not getting off with a cheap drink."
(어차피 넌 갚는 것도 지지리 못하잖아. 저번에 저녁 사줬을 때도 커피 한 잔으로 퉁치려고 했으면서. 이걸 빚이라고 부를 거면, 싼 음료수 한 잔 따위로 끝낼 생각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