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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 않는 일

Spill Lute 2026. 10. 27. 02:46
묻지 않는 일
Romeo merrow X Spill Rute
작은 손가락이 푸른 조개껍데기를 한 번 꾹 감싸 쥐었다가 느슨하게 풀렸다.
반박도 없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도 없었다. 그저 살짝 들어 올린 가느다란 어깨 위로 로미오의 손에 들려 있던 회색 겉옷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연하늘색의 얇은 가디건 위로 묵직한 면직물이 포개지자, 밤바람에 가볍게 나부끼던 옷자락이 단숨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스필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리조트 별채로 향하는 나무 계단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받아들여졌다. 아까 침실에서는 기어코 단추를 풀어 벗어 돌려주더니, 이번에는 군말 없이 제 옷을 걸치고 걷는 뒷모습이 호박색 마법 불빛 아래로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다. 로미오는 모래사장 위에 멍하니 서서 그 모습을 일 초쯤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걸음을 옮겨 스필의 옆자리로 바짝 따라붙었다.
더 캐묻지 않기로 한 건 나니까.
개시제 밤에 약속했던 조건이 혀끝을 맴돌았다. 왜 그런 식으로 말하는지, 도대체 무슨 기억을 품고 있기에 껍데기만 남았다는 소리를 그리도 담담하게 뱉어내는지 당장이라도 어깨를 붙잡고 추궁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한 걸음 더 밀어붙이면 저 조용한 금빛 눈동자가 다시 까마득히 먼 곳으로 도망쳐 버릴 것만 같았다. 대신 그녀의 손바닥 안에 단단히 쥐여 있는 푸른 조개껍데기 하나가 기묘한 위안을 주었다. 적어도 자기가 건넨 것은 버리지 않고 쥐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