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탈
Romeo merrow X Spill Rute
그는 말린 사과 조각과 계피가 섞인 과일차 티백 두 개를 골라 머그잔에 넣었다. 뜨거운 물을 붓자 달콤하고 향긋한 과일 향이 수증기를 타고 거실 안으로 은은하게 퍼져 나갔다. 로미오는 찬장 구석을 더 뒤적거려 개별 포장된 꿀 스틱과 버터 쿠키 몇 개가 담긴 작은 접시까지 챙겨 거실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할 일을 다 마치고 나니 갑자기 손이 심심해졌다. 욕실 쪽에서는 여전히 규칙적인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소파 한가운데에 털썩 주저앉은 로미오는 괜히 다리를 떨며 맞은편 벽에 걸린 풍경화를 노려보았다.
대체 뭘 그렇게 오래 씻는 거야. 설마 따뜻한 물 나온다고 그 안에서 졸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전차 유리창에 머리를 박으며 꾸벅꾸벅 졸던 전적이 있는 녀석이라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다. 게다가 욕실 바닥은 대리석이라 미끄러웠다. 지난번 낡은 등대 계단이 무너졌을 때의 아찔한 감각이 불쑥 되살아나자, 가만히 앉아 있던 로미오의 미간이 좁혀졌다.
결국 오 분도 채 버티지 못한 그가 소파에서 일어나 욕실 문 앞을 서성거렸다. 문고리를 잡을 생각은 없었지만, 발걸음은 자꾸만 불투명한 유리창이 끼워진 문짝 주변을 맴돌았다. 안에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는지 문틈 아래로 따뜻하고 축축한 공기가 새어 나와 발목을 스쳤다.
그때 물소리가 뚝 멎었다.
로미오는 반사적으로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쳐서 소파 쪽으로 돌아왔다. 마치 문 앞에서 엿듣다가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쿵쾅거렸다. 그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소파에 깊숙이 등을 기대고 앉아, 한쪽 다리를 꼬고 팔걸이에 팔꿈치를 괸 채 일부러 거만한 자세를 잡았다. 시선은 식탁 위에 놓인 자신의 단말기에 고정했지만 화면에는 아무것도 떠 있지 않았다.
잠시 후 욕실 문이 열리고 하얀 수증기와 함께 스필이 걸어 나왔다. 로미오는 단말기에서 눈을 떼며 턱을 까딱였다. 곧장 그녀의 머리카락 끝부터 확인한 그의 눈썹이 예상했다는 듯 꿈틀거렸다.
Romeo
"I knew it. Your hair is still dripping wet."
(그럴 줄 알았다. 머리에서 물 뚝뚝 떨어지잖아.)
그는 소파 옆에 미리 꺼내 두었던 마른 대형 수건 하나를 집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성큼 다가간 로미오는 스필이 대꾸할 틈도 주지 않고 그녀의 머리 위로 폭신한 수건을 푹 덮어씌웠다.
Romeo
"Sit down on the sofa. If you get water all over the floor, you're the one wiping it up."
(소파에 가만히 앉아. 바닥에 물 다 흘리고 다니면 네가 닦아야 될 줄 알아.)
말은 험하게 하면서도 수건 너머로 스필의 정수리를 감싸 쥔 두 손의 힘은 고양이 털이라도 말려 주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Spill
"...나 혼자서 할 수 있는데. 난... 난 세 살 먹은 애가 아니야."
시야가 수건으로 푹 덮인 스필로부터 작은 항의가 있었다.
Romeo
"If you weren't three years old, you wouldn't have walked out here dripping like a stray cat caught in the rain."
(네가 세 살짜리 애가 아니면 비 맞은 길고양이처럼 물을 뚝뚝 흘리면서 걸어 나오지도 않았겠지.)
안드레아나 이루카가 이 꼴을 봤으면 당장 기절초풍하며 타이드풀에 박제했을 것이다. 머로 가문의 그 성질 더러운 막내 도련님이 남의 뒤통수에 대고 수건이나 문질러주고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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