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도 울어?
Romeo Merrow X Spill Rute
로미오는 자기 주머니에서 아까 조개를 담아왔던 부드러운 남색 천 주머니를 다시 꺼내 스필의 손 위로 씌우듯 감싸 쥐었다.
Romeo
"Put it back in the pouch for now. If you trip on the stairs and crack the circuit I stayed up all night carving, I'll actually cry."
(일단 주머니에 도로 넣어 둬. 계단 내려가다가 넘어져서 내가 밤새워 판 회로 금이라도 가게 하면 나 진짜 울 거다.)
스필의 손안에서 조개를 천 주머니 속으로 쏙 밀어 넣고 복주머니 끈을 단단히 조여준 그는, 끈이 달린 주머니를 스필의 손목에 걸어준 뒤 그 손을 그대로 자기 손아귀에 덥석 잡았다.
일요일 전차 안에서는 새끼손가락 하나만 겨우 걸어두었던 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손바닥 전체를 밀착해 감싸 쥐었다. 어젯밤 각인 작업 때문에 조금 차가웠던 자기 손끝에 스필의 미지근한 체온이 금방 옮겨붙었다.
언덕 아래 벨하벤 시가지의 주황빛 가로등 불빛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로미오는 잡은 손을 가볍게 흔들며 지난번에 함께 갔던 스튜 가게 쪽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Spill
"...응. 근데... 우는 로미오는 잘 상상 안 가는데."
느긋한 발걸음이 그의 뒤를 따랐다.
Spill
"로미오도 울어?"
로미오의 발걸음이 계단 끝자락에서 우뚝 멈췄다. 자기가 방금 한 말인데도 막상 스필의 입을 통해 질문으로 되돌아오자 얼굴 전체에 열기가 확 몰렸다. 밤새워 판 회로에 금이 가면 진짜 울 거라고 했던 건 그냥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생색내려고 던진 과장이었다. 그런데 이 고지식한 인형은 그걸 또 글자 그대로 받아들여서 진지하게 묻고 있었다.
로미오 머로가 운다니.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을 노릇이었다. 일곱 살 때 안드레아와 정원에서 치고받고 싸우다 팔이 부러졌을 때도 그는 울지 않았다. 이 년 전 콩코던스 결승전에서 출전 정지 처분을 받고 가문 이사회에서 온갖 모욕적인 소리를 들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눈물은 약한 놈들이나 흘리는 것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우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짓이라고 믿어왔으니까.
하지만 스필이 조개 주머니 끈을 제 손목에 한 번 더 단단히 감아 매는 모습을 내려다보는 순간, 그의 가슴 안쪽에서 아주 낯설고 아릿한 감정이 조용히 일렁였다.
방금 전까지 사흘 동안 연락 한 통 없던 단말기를 보며 느꼈던 그 기분은 무엇이었을까. 일요일 저녁 동부선 전차 안에서 스필이 창밖만 보며 입을 닫아버렸을 때, 아무리 힘을 주어도 손아귀에서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것 같던 그 막막함은 또 무엇이었던가. 누군가를 때려눕힐 수도 없고 돈으로 해결할 수도 없는 그 무력감 앞에서 그는 태어나 처음으로 어쩔 줄을 몰라 했었다.
만약 스필이 언젠가 정말로 자기 눈앞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면. 그때도 자기가 지금처럼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버틸 수 있을지, 로미오는 난생 처음으로 미래를 확신할 수 없었다.
그 서늘한 가정을 지워버리듯 로미오는 미간을 구기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속에서 일렁이는 약한 소리 따위는 죽어도 입 밖에 낼 생각이 없었다.
Romeo
"Are you crazy? Why the hell would I cry? It's a figure of speech, you idiot."
(미쳤냐? 내가 왜 울어? 그냥 비유한 거라고, 바보야.)
일부러 더 퉁명스럽게 쏘아붙였지만 잡은 손에 들어간 힘은 조금 전보다 훨씬 단단해져 있었다. 남색 천 주머니 끈이 스필의 가느다란 손목에 두 번 감겨 있는 모양새가 퍽 마음에 들었다. 마치 자기 흔적을 칭칭 감아 묶어둔 것 같아서, 조금 전까지 뱃속을 긁어대던 불안함이 한결 가라앉았다.
그래. 이렇게 내 옆에 붙잡아 두면 된다. 손목에 주머니도 묶어뒀고 목걸이도 방에 잘 모셔뒀다잖아. 절대 안 잃어버린다고 자기 입으로 두 번이나 말했으니까.
로미오는 스필의 손등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가볍게 쓸어내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언덕 아래 골목길로 들어서자 스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하고 고소한 버터 냄새가 저녁 바람에 섞여 코끝을 간질였다. 그의 발걸음 속도는 어느새 스필의 느긋한 보폭에 완벽하게 맞춰져 있었다.
Romeo
"I haven't cried since I was five. Look closely at my face. Does this look like a face that cries over a cracked shell?"
(다섯 살 이후로 운 적 없거든. 내 얼굴을 잘 봐라. 이게 조개껍데기 깨졌다고 질질 짤 얼굴로 보이냐?)
자존심을 세우듯 스필 쪽으로 얼굴을 들이밀며 눈을 부라렸지만, 정작 붉은 눈동자에는 사나운 기색 대신 어쩔 수 없는 다정함이 그득하게 차올라 있었다. 모르고 살던 것들을 차례로 일깨워주는 게 바로 눈앞의 이 작은 여자애라는 사실을, 로미오는 아직 인정하지 못한 채 덮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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