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별채 갖고 싶다
Romeo Merrow X Spill Rute
다시 소파 쪽으로 돌아온 그가 탁자 위에 놓인 리모컨을 집어 들며 스필을 내려다보았다.
Romeo
"If we go out, it'll just be a short walk around the harbor market in the afternoon to grab some souvenirs or whatever. Until then, nobody's chasing us out of here. You want that stupid wizard movie back on, or are you going back to sleep?"
(나가봤자 오후에 항구 시장 쪽이나 잠깐 돌면서 기념품 같은 거나 구경할 거야. 그전까진 여기서 아무도 우리 안 쫓아내. 어제 보던 그 바보 같은 마법사 영화 다시 틀어줘, 아니면 그냥 더 잘래?)
Spill
"영화는... 괜찮아. 여기 있을래."
스필은 쿠션을 끌어안고 꾸물댔다. 루멘홀드에 섞여든 이래 책을 하루 이상 안 읽은 날이 있던가? 없었다. 지나치게 느긋한 일상이 흘렀고 그게 참 이상했다. 그렇게 살던 때도 물론 있었다마는, 워낙 까마득해서 기억도 안 날 뿐이다.
Spill
"여기... 이 건물, 오래오래 있으려면 뭐 해야돼. 돈이 필요해?"
리모컨을 쥐고 있던 로미오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쿠션에 턱을 괴고 꼼지락거리는 분홍빛 머리통에서 방금 무슨 소리가 나온 건지, 그는 순간적으로 제 귀를 의심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이틀 밤 자고 나니까 이제는 아예 눌러앉을 궁리를 하는 모양이다.
로미오는 기가 차다는 듯 코웃음을 쳤지만 솟구치는 입꼬리까지는 어쩌지 못했다. 그는 리모컨을 탁자 위에 툭 던져놓고 소파 등받이에 팔을 걸친 채 스필 쪽으로 상체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Romeo
"Money? Did you already forget whose family owns half this coast? Nobody takes rent from me here."
(돈? 여기가 누구네 집안 땅인지 벌써 까먹었냐? 여기서 나한테 방세 받아 갈 간 큰 사람은 없어.)
거들먹거리는 말투였으나 붉은 눈동자는 더할 나위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평소에는 사고 싶은 것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다던 애가, 루멘홀드 도서관의 그 칙칙한 책더미도 잊어버린 채 이 별채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셈이었다. 어제 안드레아 앞에서 리조트 값어치를 한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보다 지금 이 한마디가 백 배쯤 더 뿌듯했다.
그는 쿠션을 끌어안고 있는 스필의 뺨을 가볍게 쿡 찔렀다.
Romeo
"Besides, normal people can't even book this annex with money. It's strictly for the family. So if you want to stay here for a long time, there's only one requirement."
(게다가 이 별채는 일반 사람들이 돈 들고 와도 예약조차 못 해. 우리 집안 전용이거든. 그러니까 네가 여기 오래오래 있고 싶으면 조건은 딱 하나뿐이야.)
로미오는 스필의 눈앞에 자기 검지를 까딱이며 거만하게 턱을 치켜들었다.
Romeo
"You have to bring me with you. That's the only pass that works at the gate."
(나를 데리고 와야지. 정문 통과하려면 그 출입증밖에 안 통하니까.)
어제 해변에서 고래를 보러 가자며 환불 불가 예약을 걸어두었던 것처럼, 그는 이번에도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자기 존재를 조건으로 끼워 넣었다. 어젯밤 텔레비전에서 봤던 그 재수 없는 이별 영화 따위는 생각도 나지 않을 만큼 좋은 기분이었다. 그가 슬쩍 목소리를 낮추었다.
Romeo
"Why, do you like this place that much? Better than your dusty library?"
(왜, 여기가 그렇게 마음에 들어? 네가 맨날 틀어박혀 있는 그 먼지 나는 도서관보다 나아?)
Spill
"도서관도 좋아해. 근데... 방학 동안은 여기서 책 읽고, 바다 다니면 좋을 것 같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주말에 잠깐 하프타이드로 불러내는 것조차 벅찼던 애다. 루멘홀드의 그 답답한 정원과 도서관 벤치 말고는 갈 곳도 없고 가고 싶은 곳도 없다던 애이기도 했다. 그런데 담요 속에 폭 파묻힌 채 눈을 느리게 깜빡이는 꼴을 보아하니, 그냥 빈말로 해보는 소리가 아니라 진심으로 한 달 살이쯤 계획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Romeo
"Look at this greedy little thing. Trying to take over our family annex for the whole summer now?"
(이 욕심쟁이 좀 봐라. 이제는 아예 여름 내내 우리 집 별채를 전세 내시겠다?)
놀리듯 손가락으로 스필의 이마를 가볍게 톡 튕겼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러자고, 짐 싸서 아예 내일 다시 내려오자고 큰소리를 치고 싶었다. 이 리조트 별채 하나 한 달 내내 비워두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거기까지 생각하던 로미오의 표정이 순간 미묘하게 구겨졌다. 그의 머릿속에 당장 내일 아침부터 시작될 솔트포드의 콩코던스 대표팀 하계 전지훈련 일정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젠장. 평일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벌워크 실습장이랑 훈련장에 묶여 있어야 하잖아.
출입증은 자기 하나뿐이라고 방금 전에 호기롭게 선언해 놓고 정작 본인이 평일 내내 솔트로우를 벗어날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안드레아나 리조트 지배인에게 말해두면 스필 혼자 이곳에 머무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넓은 별채와 조용한 전용 해변에 스필 혼자만 남겨두는 상상을 하자마자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건 절대 싫다. 나도 없는데 여기서 혼자 책 읽고 노는 꼴을 어떻게 두고 봐.
로미오는 소파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채 못마땅한 듯 자기 뒷머리를 거칠게 헤집었다. 방금 전까지 기세등등하던 태도는 어디 가고 아쉬움과 투정이 섞인 한숨이 툭 튀어나왔다.
Romeo
"...I have Concordance team training on weekdays starting tomorrow. If I skip that after barely making the roster, Coach Kerr will actually skin me alive."
(......내일부터 평일에는 콩코던스 대표팀 훈련 있어. 겨우 명단에 들어갔는데 그거 빼먹으면 케르 교수가 진짜로 내 가죽을 벗겨버릴걸.)
스필이 저를 보러 솔트포드에 오려면 올해 콩코던스에서 무조건 이겨야 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훈련을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담요 위로 손을 뻗어 스필의 발목 부근을 가볍게 토닥이며 조건을 고쳐 불렀다.
Romeo
"Leaving you here all by yourself for a month is out of the question. You don't even cook properly. So we're coming back every single weekend instead. Friday right after training ends, until Sunday night."
(너 혼자만 여기 한 달 내내 내버려 두는 건 절대 안 돼. 넌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잖아. 그러니까 대신 주말마다 매주 내려오자. 금요일 훈련 끝나자마자 출발해서 일요일 밤까지.)
마치 대단한 선심이라도 쓰는 양 거만하게 턱을 들었지만 실상은 스필이 자기 없이 이곳에 오는 게 싫어서 부리는 고집이었다. 로미오는 스필 쪽으로 조금 더 몸을 기울이며 눈을 반짝였다.
Romeo
"Bring a whole stack of your thickest books next Friday. I'll carry them all for you. Deal?"
(다음 주 금요일엔 네가 좋아하는 그 두꺼운 책들 산더미처럼 챙겨 와. 내가 다 들어줄 테니까. 어때,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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