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그머니나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앞쪽 갈림길 옆에는 성인 남자 허리 높이만 한 둥근 돌 수조가 놓여 있었다. 수조 안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연초록색 이끼들이 수면 아래에서 둥실거렸다. 마나 농도에 반응해 빛을 내는 유리이끼였다. 로미오는 수조 가장자리에서 걸음을 멈추고 스필을 돌아보았다.
Romeo
"Look at that tank. That's the stuff they put inside Ebb meters. First time seeing it alive, right?"
(저 수조 봐. 저게 소모 측정기 안에 들어가는 풀이야. 살아 있는 걸로 보는 건 처음이지?)
(저 수조 봐. 저게 소모 측정기 안에 들어가는 풀이야. 살아 있는 걸로 보는 건 처음이지?)
Spill
"항상 죽어 있는 상태로 봤지. ...그보다는, 애초에 원본을 알 수 없는 형태로 본 것에 가깝잖아."
스필의 하얀 검지가 수면 아래로 쑥 들어갔다. 손끝이 연초록색 유리이끼 덩어리를 콕 찔렀다. 말랑한 수초가 힘없이 밀려났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로미오의 입에서 바람 빠지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계기판 안에 들어갈 때는 건조해서 얇은 막으로 압축해버리니 원래 모습을 알 리가 없다. 그 당연한 사실을 두고 원본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는 게 또 묘하게 스필다웠다. 하지만 맨손가락으로 찌르기만 해서는 저 둔한 풀이 반응할 리가 없었다.
Romeo
"Poking it won't do anything. It's not a button. You have to push a little current through the water if you want it to wake up."
(그렇게 찌른다고 아무 일도 안 나. 버튼이 아니잖아. 깨우려면 물속에 마나를 조금 흘려 넣어야지.)
(그렇게 찌른다고 아무 일도 안 나. 버튼이 아니잖아. 깨우려면 물속에 마나를 조금 흘려 넣어야지.)
로미오는 수조 가장자리로 반 걸음 더 다가섰다. 스필의 어깨 바로 뒤쪽에서 그의 그림자가 수조 위를 덮었다. 그는 빈 오른손을 들어 물속에 잠긴 스필의 손가락 옆으로 나란히 넣었다. 미지근한 물이 손가락 마디를 감쌌다.
보여주기는 이게 제일 빠르다.
로미오는 아주 얕게 숨을 들이마셨다. 공격이나 방어가 아니라 회로 끝에 마나만 살짝 맺히게 하는 기초 조작이었다. 그의 손끝에서 미세한 파동이 물결을 타고 퍼져 나갔다.
잠시 후 수조 안의 유리이끼들이 일제히 반응했다. 흐릿하던 연초록색 실타래 끝에서 맑은 형광빛이 은은하게 피어올랐다. 수조 바닥에 깔린 자갈까지 환하게 비추는 푸른 녹색 빛이었다. 잔잔한 물속에서 작은 별들이 무리 지어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빛이 수면에 반사되어 스필의 금빛 눈동자와 하얀 뺨 위로 일렁이며 번졌다.
로미오는 빛나는 수초보다 스필의 얼굴에 어리는 녹색 물빛을 먼저 확인했다. 천장 스피커의 가짜 새소리가 멈추고 물 흐르는 소리만 남은 온실 한가운데였다. 물속에서 두 사람의 손끝이 손가락 하나만큼의 간격을 두고 나란히 떠 있었다.
Romeo
"See? Way better than when it's crushed flat inside a cheap plastic meter. The brighter it gets, the cleaner the flow."
(봐. 싸구려 플라스틱 측정기 안에 납작하게 눌려 있을 때보다 훨씬 낫지. 빛이 밝을수록 흐름이 깨끗하다는 뜻이야.)
(봐. 싸구려 플라스틱 측정기 안에 납작하게 눌려 있을 때보다 훨씬 낫지. 빛이 밝을수록 흐름이 깨끗하다는 뜻이야.)
사실 측정기용 유리이끼는 이렇게까지 밝게 빛나지 않는다. 조금 더 선명하게 보여주려고 평소보다 출력을 한 눈금 더 올렸다는 건 굳이 말하지 않았다. 그는 물속에서 손가락을 까딱여 빛나는 이끼 한 줄기를 스필의 손끝 쪽으로 살살 밀어주었다.
Romeo
"Try it. Just let a tiny bit out from your fingertips. Don't dump too much in or the caretaker's gonna come yelling."
(해 봐. 손끝으로 아주 조금만 흘리면 돼. 너무 많이 부으면 관리인이 소리 지르러 올걸.)
(해 봐. 손끝으로 아주 조금만 흘리면 돼. 너무 많이 부으면 관리인이 소리 지르러 올걸.)
Spill
"조금이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어."
얼마나 흘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에 로미오는 막 입을 열어 눈금을 설명해주려던 참이었다.
그 순간 물속의 연초록빛이 통째로 지워졌다. 스필의 손끝이 닿은 자리에서부터 번져 나온 건 녹색이 아니었다. 수조 안에 순금 가루를 한 움큼 풀어 넣은 것처럼 눈부신 금빛이 물결을 타고 폭발하듯 피어올랐다. 이끼의 가는 실타래 하나하나가 태양 조각을 삼킨 듯 찬란하게 타올랐다. 수면 위로 솟구친 황금빛 반사광이 두 사람의 턱과 뺨, 그리고 머리 위 야자수 잎사귀 밑면까지 온통 금색으로 물들였다.
로미오의 입술이 반쯤 열린 채 굳었다. 유리이끼는 마나에 반응해 초록빛을 낸다. 용량이 크든 정밀도가 높든 색깔은 변하지 않는다. 밝기만 달라질 뿐이다. 그건 열한 살짜리 애들도 아는 상식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수조는 스필의 눈동자를 그대로 녹여 부은 것 같은 빛으로 일렁이고 있었다. 등줄기를 타고 서늘한 감각이 스쳤다.
처음 느끼는 기분이 아니었다. 개시제 밤, 등대 암초 아래 시커먼 바닷속에서 수백 마리의 물고기가 일제히 금빛으로 번쩍이며 몰려들던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번지점프대에서 떨어지던 순간 금색 눈동자 너머로 푸른 물결이 어른거렸던 것도, 틸베이 바닷속에서 물안경도 없이 눈을 뜨고 물고기 떼 한가운데를 유영하던 모습도 한꺼번에 겹쳐졌다.
이건 뭐야. 진짜로 뭐냐고.
심장이 갈비뼈를 쿵 치고 내려앉았다. 머릿속 경고등이 이질감을 알리며 날카롭게 울렸다. 하지만 로미오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들어 주변부터 살폈다. 저만치 야자수 군락 너머에서 아까 본 노부부의 말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그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로미오는 물속에서 스필의 젖은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 수조 밖으로 휙 끌어올렸다. 동시에 자기 오른손으로 수조 안의 물을 거칠게 한 번 휘저었다. 스필의 손끝이 떨어지자 찬란하던 금빛이 신기루처럼 빠르게 사그라들고, 이끼들은 다시 원래의 칙칙한 연초록색으로 돌아갔다.
그는 팔에 걸치고 있던 자기 재킷 안감으로 스필의 젖은 손과 손가락 사이를 성급하게 닦아냈다. 물기를 훔쳐내는 손길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Romeo
"What the hell kind of mutant weeds are they growing here? The mineral salt in this tank must be completely screwed up."
(여긴 대체 무슨 돌연변이 잡초를 키우는 거야? 이 수조 광물염 배합이 완전히 맛이 갔나 본데.)
(여긴 대체 무슨 돌연변이 잡초를 키우는 거야? 이 수조 광물염 배합이 완전히 맛이 갔나 본데.)
누구에게 하는지 모를 핑계가 거칠게 튀어나왔다. 자기 자신에게 들려주는 말에 더 가까웠다. 그래, 오래된 온실이라 수질 관리가 엉망인 거다. 바닥에 깔린 자갈에 이상한 광물이 섞였거나 열 룬이 새서 화학 반응을 일으킨 게 분명했다.
그렇게 우기지 않으면 방금 본 그 말도 안 되는 금빛을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스필의 물기가 다 닦였는데도 로미오는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손가락을 고쳐 쥐며 제2온실로 이어지는 유리 통로 쪽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Romeo
"Don't touch the tanks here. Who knows what kind of cheap fertilizer they dumped in. Come on, let's go see the pond before those old people get here."
(여기 수조 건드리지 마. 무슨 싸구려 비료를 들이부었는지 알 게 뭐야. 가자, 저 노인네들 오기 전에 연못이나 보자고.)
(여기 수조 건드리지 마. 무슨 싸구려 비료를 들이부었는지 알 게 뭐야. 가자, 저 노인네들 오기 전에 연못이나 보자고.)
그는 스필의 손을 잡은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손바닥에 닿은 스필의 피부는 방금 미지근한 물에서 나왔는데도 이상할 만큼 차분하고 고요했다. 그 평온함이 왜 이렇게 신경을 긁는지, 로미오는 끝내 뒤를 돌아보지 않고 제2온실의 문을 밀어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