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휘제와 부두제_밤바다가 뭐가 어려워
Romeo merrow X Spill Rute
Spill
"밤바다는 아무것도 안 보여서... 어려워."
방파제 끝 반원형 전망대에 발이 닿자 등 뒤의 축제 소음이 물먹은 솜처럼 둔탁하게 가라앉았다. 대신 발밑의 거친 현무암 테트라포드 사이로 검은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발목 아래에서 낮게 울렸다. 축축한 소금기를 머금은 밤바람이 로미오의 노출된 팔뚝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손바닥 안에 잡힌 스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로미오는 스필의 시선이 맞잡은 손등에서 칠흑 같은 수평선으로 옮겨가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바다가 수학 문제도 아니고 어려울 게 뭐가 있어. 안 보이면 안 보이는 대로 두면 그만이지.
그렇게 코웃음을 치려던 찰나였다. 스필의 눈이 어둠 속에서 어디에도 초점을 맞추지 못한 채 아득하게 풀려 있는 것이 보였다. 낮에 본 부두의 소란이나 노점의 주황색 불빛보다, 저 텅 빈 어둠이 스필을 훨씬 더 멀리 끌어당기는 것 같아 로미오는 괜히 속이 뒤틀렸다.
Romeo
"What's so hard about water? It's just the same sea from this afternoon with the lights turned off."
(물이 뭐가 어려워? 그냥 아까 낮에 본 바다에 불만 꺼진 거잖아.)
그는 투덜거리며 스필을 녹슨 철제 난간 가까이 데려갔다. 손바닥에 닿는 난간의 페인트 껍질은 까슬까슬했고, 바다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쇠를 통해 손끝에 시리게 전해졌다.
로미오는 스필의 손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을 난간 너머 허공으로 뻗었다. 짧게 숨을 들이마시자 차가운 바다 냄새가 폐부 깊숙이 들어찼다.
Romeo
"Lumen."
(광.)
손끝에서 튕겨 나간 백색의 빛 구슬 하나가 검은 수면 위까지 천천히 내려앉았다. 눈이 부시지 않을 만큼만 부드럽게 조율된 시전이었다.
먹물 같던 어둠이 동그랗게 걷히자, 그 아래에서 잘게 부서지는 파도의 흰 거품과 초록빛 해초가 일렁이는 물결, 바위 틈을 스쳐 지나가는 은빛 치어 몇 마리의 비늘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출렁이는 수면이 빛을 받아 깨진 유리 조각처럼 반짝이며 스필의 연분홍색 머리카락과 금빛 눈동자 위에 잔물결 그림자를 드리웠다.
Romeo
"See? Not empty, and not complicated. If you can't see anything, you just make a light."
(보이지? 비어 있지도 않고, 복잡할 것도 없어. 아무것도 안 보이면 그냥 불을 켜면 돼.)
"So stop staring out where there's nothing and look right here."
(그러니까 아무것도 없는 저 멀리 쳐다보지 말고, 바로 여기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