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7월에서
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merrow X Spill Rute
6월의 마지막 두 주는 로미오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부두제가 끝난 다음 날부터 대표팀 합동 훈련 일정표가 갱신되었다. 오전에는 벌워크 해안 구조 실습이 있었고 오후에는 팀 단위 연계 훈련이 잡혔으며 밤에는 전술 회의가 이어졌다. 수니바 케르는 그가 윈드워드 시절 버릇대로 혼자 앞서 나갈 때마다 훈련을 멈추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네 뒤에 누가 남았지, 머로. 대답을 못 하면 처음부터 다시였다. 방파제 끝에서 젖은 장갑을 벗어 던지며 욕을 삼킨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주말은 비워 둔다던 말은 첫 주 토요일에 이미 무너졌다. 올해 콩코던스 경기 규칙 공개가 다가오면서 코치진은 어떤 문제가 나와도 버틸 수 있는 기초 연계를 몸에 새기겠다며 주말 보충 훈련을 끼워 넣었다. 로미오는 그 공지를 읽고 기숙사 사물함 문짝을 주먹으로 한 번 쳤다. 문짝은 찌그러지지 않았지만 손등이 사흘 동안 시큰거렸다.
스필 쪽도 사정은 비슷했다. 광휘기의 마지막 시험이 줄줄이 이어졌다. 그녀의 답장은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 그리고 조금 더 짧게 왔다. 로미오는 그 짧은 답장들을 밤마다 침대에 누워 다시 읽었다. 시험 끝. 밥 먹었어. 로미오도. 세 단어짜리 문장 하나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붙들려 있을 수 있다는 게 한심하면서도 손가락은 자꾸 화면을 위로 밀어 올렸다.
얼굴을 본 건 딱 한 번이었다. 6월 마지막 주 수요일 저녁 전술 회의가 예정보다 일찍 끝났을 때 그는 벨하벤 중앙역까지 내달려 갔고 역 앞 24시 매대에서 산 따뜻한 우유를 그녀 손에 쥐여 주었다. 막차 시간 때문에 함께 있었던 건 고작 이십 분이었다. 그 이십 분 동안 스필은 시험 범위에 대해서 말했고 로미오는 거의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그녀의 쇄골 아래에서 붉은 목걸이가 여전히 걸려 있는 것만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7월 첫째 주 목요일 오후 세 시.
로미오는 오전 해안 실습을 마치고 기숙사 침대에 엎어져 있었다. 젖은 머리카락에서 떨어진 물방울이 베개에 동그란 얼룩을 만들었다. 손끝은 아직 바닷물의 냉기가 덜 빠져 저릿했고 침대 머리맡에는 반쯤 먹다 만 초콜릿 바와 귀 한쪽이 꺾인 토끼 인형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불법 토끼. 각인 판이 든 배 부분을 엄지로 한 번 꾹 누르자 손끝의 저릿함이 아주 조금 물러가는 것 같았다.
방금 코치진의 공지가 올라왔다. 이번 주 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까지 대표팀 전원 강제 휴식. 규칙 공개 전 마지막 정비 기간이라 장비실도 훈련장도 전부 잠근다는 내용이었다.
로미오는 그 문장을 두 번 읽고 벌떡 일어나 앉았다. 침대 스프링이 비명을 질렀다.
사흘. 사흘이 통째로 비었다. 걔는 이제 방학이고.
건너편 침대에서 낮잠을 자던 이루카가 베개 밑에서 얼굴을 반쯤 들고 뭐라고 웅얼거렸지만 로미오는 듣지 않았다. 그는 이미 타이드풀을 열고 있었다. 마나 서명 인증이 손끝에서 미지근하게 번지고 대화창 맨 위에 연분홍색 머리카락의 작은 프로필이 떠올랐다.
Romeo
너 시험 끝났지. 나 방금 주말 훈련 다 취소됐어.
틸베이. 이번 주말.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책 먼저 읽어야 한다는 소리 하지 마.
2주 내내 시험 봤으면 핑계 쓸 자격은 다 소진한 거야.
교복 말고 다른 옷 챙겨.
대답해.
너 지금 그 정원 벤치에 앉아 있는 거 다 알아.
보내기를 누른 뒤에야 로미오는 마지막 문장이 지나치게 정확하다는 걸 깨달았다. 방학 첫 주 오후 세 시라면 걔가 있을 곳은 뻔했다. 도서관 아니면 그 인적 없는 정원 벤치. 그는 그 사실을 너무 당연하게 알고 있는 자신이 갑자기 민망해져서 화면을 엎어 이불 위에 던졌다.
베개 밑에서 이루카의 어깨가 들썩거렸다. 웃음을 참는 소리가 이불을 타고 새어 나왔다. 로미오는 그쪽을 노려보면서도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창밖 방파제 너머로 오후의 햇빛이 바다 위에 하얗게 부서지고 있었다. 동쪽으로 가는 전차를 타면 저 빛이 한 시간 반쯤 뒤에는 틸베이의 절벽 위로 옮겨 가 있을 것이다.
Spill
금요일 밤에 출발하면 돼?
사실 짐은 반쯤 싸놨어.
이제 수업이 없어서.
책 읽는 거 말곤 딱히 할 일이 없거든.
벌써 짐을 반이나 싸놨다고. 내가 연락할 줄 알고 미리 챙겨 두고 기다렸다는 소리잖아.
오전 내내 차가운 바닷물 속에서 굴러도 꿈쩍 않던 심장이 갈비뼈를 부술 듯이 쿵쾅거렸다. 손끝에 남아 있던 소모의 저릿함 따위는 순식간에 날아갔다. 로미오는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가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오는 웃음을 막으려고 손등으로 입가를 세게 눌렀지만 이미 귀 끝까지 시뻘겋게 달아오른 뒤였다.
건너편 침대에서 베개를 끌어안고 있던 이루카가 기어코 고개를 쏙 내밀었다. 하늘색 눈동자가 흥미진진하게 반짝였다.
Iruka
"Whoa. Look at your face. Did she say yes, or did you finally lose your mind from Ebb?"
(와. 너 얼굴 좀 봐라. 걔가 좋대, 아니면 드디어 소모 때문에 돌아버린 거냐?)
(와. 너 얼굴 좀 봐라. 걔가 좋대, 아니면 드디어 소모 때문에 돌아버린 거냐?)
Romeo
"Shut up and go back to sleep."
(닥치고 잠이나 자.)
(닥치고 잠이나 자.)
로미오는 옆에 놓인 베개를 집어 이루카의 얼굴을 향해 집어 던졌다. 베개에 정통으로 맞고도 낄낄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그는 아예 벽 쪽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토요일 아침부터 일요일 밤까지 이틀도 모자라는데 금요일 밤부터라니 마다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어차피 내일 오후부터는 공식 휴식 기간이었다. 리조트 쪽에 연락할 필요도 없이 그냥 빈 별채 열쇠만 챙겨서 가면 그만이었다.
그는 조금 전보다 한결 빨라진 손놀림으로 화면을 두드렸다.
Romeo
금요일 밤도 돼. 오히려 그게 낫겠다.
동부선에 관광객도 덜 붐비고.
잠깐.
근데 대체 뭘 싸놨는데?
가방 열었는데 백과사전 들어 있으면 전차 창밖으로 다 던져버릴 줄 알아.
내일 저녁 6시에 루멘홀드 정문 앞으로 데리러 갈게.
나머지 반도 제대로 마저 싸놔.
메시지를 보내고 난 로미오는 침대 머리맡에 놓인 토끼 인형을 슬쩍 집어 들었다. 한쪽 귀가 접힌 하얀 인형을 만지작거리며 그는 벌써 내일 저녁 여섯 시를 계산하고 있었다. 스물일곱 시간 남았다.
Spill
.......
책 가져가면 안 돼?
화면에 말줄임표가 먼저 뜨고 삼 초쯤 뒤에 올라온 두 번째 문장을 본 순간 로미오는 기어코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였네. 반쯤 싸놨다던 짐이 전부 책이었다는 소리잖아.
헛웃음이 섞인 숨결이 화면 위로 흩어졌다. 남들은 여름 휴양지에 간다고 하면 수영복이니 선글라스니 챙기느라 바쁜데 이 녀석은 가방에 활자 뭉치부터 구겨 넣고 있었다. 머릿속으로 연분홍색 정수리가 여행 가방 앞에서 진지하게 책 두께를 재고 있는 장면을 떠올리자 조금 전까지 날카롭게 곤두서 있던 신경이 솜사탕처럼 허물어졌다.
건너편 침대에서 베개를 껴안고 눈치를 보던 이루카가 귀를 쫑긋 세웠다.
Iruka
"What? What did she say? You're making that gross face again."
(뭔데? 걔가 뭐래? 너 또 그 재수 없고 느끼한 표정 짓는다.)
(뭔데? 걔가 뭐래? 너 또 그 재수 없고 느끼한 표정 짓는다.)
Romeo
"I told you to shut it."
(입 닥치라고 했다.)
(입 닥치라고 했다.)
말은 험하게 뱉으면서도 올라간 입꼬리는 도무지 내려올 줄 몰랐다. 로미오는 한 손으로 젖은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기며 답장을 쳤다. 아예 안 된다고 하면 기숙사 방 바닥에 주저앉아 한 시간 동안 어떤 책을 빼야 할지 고민할 게 뻔했다.
Romeo
잠깐. 네가 미리 싸놨다는 반쪽이 진짜로 전부 책이었어?
어이가 없네 진짜.
딱 한 권만.
얇은 걸로.
한 손에 들어오는 크기만 허락.
Spill
☹️
Romeo
거기다 조건 더있어. 전차 타는 동안만 읽어.
Spill
😑
Romeo
틸베이 내렸는데 나 안 보고 종이쪼가리만 들여다보면 바로 압수한다.
Spill
알겠어.
양보하는 거야.
로미오는 휴대폰을 쥔 채 침대 헤드에 등을 기댔다. 창문 틈으로 불어오는 솔트로우의 짠 바닷바람이 아까보다 한결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는 당장 내일 저녁에 들고 갈 자기 가방을 스캔하듯 둘러보았다. 방수 파우치와 여벌 옷 몇 장 그리고 스필이 바닷바람에 춥다고 할 때 덮어 줄 얇은 여름용 겉옷 하나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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