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만남
Romeo Merrow X Spill Rute
하프타이드의 밤은 두 학교 사이에 걸쳐 있는 저지대답게, 언제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냄새가 난다. 튀김 기름과 맥주 거품, 상시등의 미지근한 빛, 그리고 그 위로 얇게 깔린 바다 냄새. 골목 하나만 꺾으면 세상은 순식간에 좁아지고, 벽돌 벽에 새겨진 유지 각인이 낡은 별자리처럼 희미하게 맥동한다. 그 벽이 지금 스필의 등을 받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누군가한테 벽으로 밀쳐졌다.
솔트포드 필드 재킷을 입은 두터운 팔이 스필의 머리 옆 벽돌을 짚었다. 소맷단 안감에서 엿보이는 벌워크의 주황색이 선명했다. 각인된 접지선이 상시등 아래에서 가느다랗게 빛을 튕겼다. 거대한 그림자가 골목의 남은 빛을 전부 삼켰고, 짙은 밤을 품은 머리칼 아래에서 선명한 붉은 눈이 스필을 내려다봤다. 방금 벽으로 사람을 밀어붙인 사람답지 않게 숨이 지나치게 고르다.
정작 로미오의 심장은 재작년 콩코던스 이후 처음으로 거칠게 박동하고 있었다. 젠장, 쟤한테 들킬 것 같잖아. 차라리 멈춰. 실현되면 큰일 날 법한 일을 생각 없이 떠올리며 그는 일부러 천천히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입을 열자 세상의 모든 숨이 위에 올라탄 듯 무겁고 낮은 목소리가 흘렀다. 톤이 너무 평이해서 오히려 연극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치 이 문장만 오랫동안 연습해온 배우처럼.
Romeo
Don't scream. I'm not going to do anything.
(소리 지르지 마. 아무 짓도 안 해.)
그리고 그는 세상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말을 하듯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연스러운 말을 뱉었다.
Romeo
I'm interested in your friend. Juliet. Help me out.
(네 친구한테 관심 있어. 줄리엣. 좀 도와줘.)
골목 저편에서 전차가 지나가며 레일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사라질 때까지 그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평생을 쓰레기통에 던지듯 말해 왔던 남자의 입에 오늘은 처음으로 대본이 붙어 있었다. 친구 셋이 술에 취해 써준 것이었으며 그중 누구도 연애를 해본 적이 없었다. 관심 없는 척하면 경계를 푼다며. 그건 로소가 한 말이었나 이루카가 한 말이었나. 심장이 갈비뼈 안쪽을 두 번 세게 걷어찼고, 로미오는 그 부산스러움을 짜증이라고 뭉뚱그렸다. 벽돌에 닿은 손바닥을 조금 옮겼다.
Romeo
You're at Lumenhold, right? Same year.
(루멘홀드지. 같은 학년.)
어떻게 알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그걸 설명하려면 그가 요 며칠 동안 얼굴만 아는 사람에 대해 스토킹하듯 정보를 찾아다녔던 행적을 구구절절 말해야 했고, 차라리 유명한 오르멜린 방계 여자를 핑계로 대는 것이 그나마 나아 보였다. 스필을 가둔 팔은 여전히 거두지 않았다. 거두는 순간 이 대화가 끝나버릴 것 같아서. 그리고 하프타이드에 올 때마다,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서 영원히 스필의 얼굴을 찾게 될 것 같아서. 차가운 밤공기 사이로 골목 바깥을 스쳐 지나가는 루멘홀드 학생들의 말소리가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하지만 지금 로미오에게 이 골목길 안은 단둘만의 세계였다.
Spill
Ah, ...
(아, ...)
스필의 입이 한 번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 닫혔다가, 한동안 열리지 않았다가, 그의 안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르륵, 쪼그려 앉았다. 그러니까 옆으로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그리고 슬금슬금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팔이 짚고 있던 벽돌은 그대로였다. 다만 그 아래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없었다. 로미오는 자신이 만든 그림자의 빈 공간을 잠깐 내려다봤고,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자세로 벽을 짚고 있는 남자가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시등의 미지근한 빛이 텅 빈 벽돌 위로 내려앉았다. 유지 각인이 마치 비웃듯 한 번 맥동했다.
아니, 이게 무슨. 쪼그려 앉아서 빠져나가는 건 대본에 없었는데. 로소 그 새끼는 이런 경우를 상정해두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을 때 스필은 이미 두어 걸음 밖에 있었다. 뒷걸음질. 그것도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아주 느리게. 마치 벌워크 훈련장에서 배운 대피 요령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처럼 침착했다. 로미오는 그 걸음을 쫓아가고 싶은 충동과, 여기서 쫓아가면 정말 골목에서 여자 잡는 미친놈이 된다는 계산 사이에서 이 초간 멈춰 있었다. 결국 그는 벽에서 손을 떼고, 아주 과장되게 두 손을 들어 올렸다. 항복이라기보다는 검문에 걸린 인간의 자세였다.
Romeo
Okay. Okay. I'm the asshole here, I get it.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개새끼야, 인정.)
목소리가 방금보다 반 옥타브 올라갔다. 연습해온 저음은 두 문장 만에 폐기됐다. 그는 들어 올린 손을 그대로 유지한 채 한 걸음 물러났고, 그 바람에 뒤에 쌓여 있던 맥주 상자를 걷어차서 골목 전체에 유리병 부딪히는 소리를 울렸다. 재작년 콩코던스 결승에서 상대의 귀를 물어뜯은 남자가 빈 병 소리에 어깨를 움찔했다. 로미오는 즉시 그 상자를 노려봤다. 상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Romeo
...That was the box, not me. Obviously.
(...저건 상자가 그런 거야. 내가 아니라. 당연히.)
스필은 계속 뒷걸음질치고 있었다. 골목 입구의 밝은 빛이 그 뒤로 점점 넓어졌다. 로미오는 직감했다. 저 애가 큰길로 나가는 순간 이 대화는 영구히 끝난다. 그리고 다음 주 하프타이드에서, 그리고 그 다음 주에도, 그는 지나가는 연분홍 머리를 전부 두 번씩 돌아보며 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상상만으로도 좆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인생에서 두 번째로 대본을 벗어났다.
Romeo
Wait. Just... don't run. I'll stand here. See?
(기다려. 그냥... 도망은 가지 마. 나 여기 서 있을게. 보여?)
그리고 그는 정말로 섰다. 골목 안쪽, 벽돌 벽에 등을 붙이고, 두 손을 재킷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로. 187센티의 몸이 일부러 작아 보이려고 애쓰는 광경은 어떤 각도에서도 성공하지 못했다. 빗물 젖은 벽돌 냄새가 등 뒤에서 올라왔고, 큰길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가 물러갔다. 그는 붉은 눈을 들어 스필을 봤다가, 곧 시선을 떨어뜨려 젖은 바닥의 자기 그림자를 봤다. 시선을 맞추면 뭔가 들킬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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