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각
Romeo Merrow X Spill Rute
세상이 뒤집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반 초도 되지 않았다. 발바닥에서 지지대가 사라지는 순간 로미오의 위장이 갈비뼈 아래로 처박혔고, 귓가에서는 바람이 젖은 천을 찢는 것 같은 소리를 내며 울부짖었다. 강물의 잿빛 표면이 거대한 손바닥처럼 쳐올라왔다가, 로프의 탄성이 잡아채자 다시 멀어졌다. 낙하 중에도 그는 습관처럼 세 가지를 확인했다. 로프의 장력, 감속 결계가 만드는 미세한 저항의 층, 그리고 팔 안쪽에 갇힌 작은 몸의 무게.
그 무게가 미친 듯이 가벼웠다. 버둥거리지도, 매달리지도 않았다.
로미오는 고개를 틀었다. 비명을 지르고 있을 줄 알았다. 최소한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재킷 소매를 쥐어뜯고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스필은 눈을 뜨고 있었다. 그것도 그가 말했으니까 억지로 뜬 것이 아니라, 원래 그렇게 하늘을 보는 사람의 얼굴로. 연분홍 머리카락이 완전히 뒤로 쓸려 올라가 드러난 이마와, 미세하게 벌어진 입술과, 흔들림 하나 없이 위를 향한 시선. 추락하는 인간이 지을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Romeo
Hey. Hey, look at me for a second.
(야. 야, 잠깐 나 좀 봐.)
그녀의 시선이 하늘에서 수평선으로, 수평선에서 지평선으로 천천히 옮겨 갔다. 낙하 중에 풍경을 감상하는 인간이 어디 있나. 그러다 아주 잠깐 그 금빛 눈이 그에게로 돌아왔고, 그 찰나에 로미오는 숨을 멈췄다. 금색이 아니었다. 아주 짧은 한순간, 눈동자 안쪽에서 깊고 차가운 청색이 불처럼 번졌다. 바닷물이 얼어붙기 직전의 색, 아니면 지맥 측정기의 바늘이 한계까지 밀려 올라갈 때 계기판에 뜨는 그 색.
뭐야, 저거. 지금 뭐였어.
로프가 최하점에서 팽팽하게 당겨졌다. 몸이 위로 튕겨 올라가는 반동에 척추가 삐걱거렸고, 감속 결계의 층이 옆구리를 미끈하게 스치며 속도를 깎아냈다. 두 번째 낙하는 첫 번째보다 짧았고, 그 사이 로미오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강바람, 로프 마찰음, 아래쪽 보트에서 올라오는 안전 요원의 확성기 소리가 전부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그의 온 감각은 팔 안쪽에 남은 체온과, 방금 본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지 못한 채 목구멍에 걸린 질문에 붙들려 있었다.
Romeo
Your eyes. Just now.
(네 눈. 방금.)
말하다가 그는 스스로 입을 다물었다. 햇빛. 각도. 강물 반사. 이유는 얼마든지 있었고 어느 것도 설명이 되지 않았다. 세 번째 반동이 잦아들며 몸이 느리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Romeo
...Never mind. Forget it. Your hair's a fucking disaster, by the way.
(...아니다. 잊어. 참고로 네 머리 지금 좆같이 엉망이야.)

'ARCHIV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간 비행2  (0) 2026.10.26
야간 비행  (0) 2026.10.26
개웃기게  (0) 2026.10.26
빵강도  (0) 2026.10.26
첫만남  (0)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