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9일 밤Romeo merrow X Spill Rute 그냥 들고 있다는 말이 녹슨 철제 계단을 오르는 로미오의 발목을 붙잡았다. 서랍에 넣는 것보다 더 지독한 대답이었다. 버리지도 못하고 잊지도 못한 채, 그저 무겁게 들고 있다는 말. 그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스필의 발소리가 쿵, 쿵, 하고 제 심장 소리처럼 울렸다. 로미오는 대답 없이 마지막 계단을 밟고 평평한 지붕 위로 올라섰다. 낡은 콘크리트 바닥과 녹슨 안전 난간으로 둘러싸인, 버려진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하프타이드의 그 어떤 술집 창가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운하의 푸른 가스등 불빛이 발아래로 길게 이어졌고, 그 끝에는 솔트로우 항구의 거대한..
2026.10.26그게 사실이라면,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살고있는 거야. 내가 당신을 기억하니까.
김보영, 당신에게 가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자니 떠오르는 곳이 있더라, 마지막 장소로는 거기가 좋을 것 같았어.
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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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3월 9일 밤_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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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3월 9일 밤
3월 9일 밤Romeo merrow X Spill Rute Spill "신경 안 써. 학교는 학교야. 졸업하면 그냥 기록이 될 뿐이야." 지나온 모든 기억이 그랬다. 기록이 될 뿐이었다. 켜켜이 쌓인 양피지 더미처럼 스필의 안에 쌓였다. 로미오는 반박하려고 숨을 들이켰다가 그대로 멈췄다. 죽은 언어에 대한 비아냥이라면 백 가지쯤 더 꺼낼 수 있었다. 프리마 링구아가 실험실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인지에 대해서는 한 시간도 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스필이 짚은 것은 언어가 아니었다.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그녀가 마지막에 덧붙인 문장이 더 거슬렸다. 졸업하면 그냥 기록이 될 뿐이야. 가스..
2026.10.26 -
ARCHIVE 심해로_3
심해로Romeo merrow X Spill Rute 스필은 아치에 쓰인 각인을 읽고 있었다. 이끼로 반쯤 뒤덮여 잘 보이진 않았다. 그리고 조개를 보았고, 바닷속 부유물을 따라 시선을 바삐 움직였다. 물고기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가 슬 기울어지기도 했다. 바닷속은 창공만큼이나 생소하고 신비로운 곳이었다. 구름 위가 왠지 모르게 익숙한 곳이었다면 바닷속은 어린 시절의 요람 같았다. 왜 그런 기분이 드는지는 스필도 잘 모르는 일이었다. 애당초 천 년간 바닷속에 들어갈 일이 또 어디있었겠나. 그녀는 코앞까지 다가온 은빛 고기 무리에게 손을 뻗다가 멈칫했다. Spill "물고기 만지면 결계 깨져?" ..
2026.10.26 -
ARCHIVE 심해로_2
심해로Romeo merrow X Spill Rute 등 뒤에서 옷자락이 당겨졌다. 아주 가벼운 무게였다. 잡아끄는 힘도, 붙잡으려는 다급함도 없이 그저 손끝을 얹은 정도. 그런데도 로미오는 계단 두 칸을 내려가다 말고 발을 멈췄다. 검은 물이 이미 부츠 옆구리를 적시고 있었고, 무릎 아래로는 젖은 돌의 미끈한 감촉이 올라왔다. 뒤돌아보지 않았다. 뒤돌아보면 저 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제 옷자락을 쥐고 있는지 확인하게 될 터였고, 확인하는 순간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젠장. 같이 물에 들어간다고 할 때는 아무 말도 없던 사람이었다. 위험하다는 소리도, 무섭다는 소리도, 물어봐 달라는 소리도 없었다. 그런 사람이 마지막..
2026.10.26 -
ARCHIVE 심해로
심해로Romeo merrow X Spill Rute 로미오의 손가락이 떠나간 손목 위로 차가운 팔찌의 감각이 선명했다. 스필이 팔을 들어 올리자, 반투명한 판 위에 새겨진 미세한 각인들이 부두의 희미한 조명을 받아 푸른빛으로 반짝였다. 그것은 단순한 마법 도구가 아니었다. 겹겹이 쌓인 논리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배려가 촘촘하게 얽힌, 솔트로우 식의 투박한 연서(戀書)와도 같았다. Spill "솔트포드는... 이런 걸 만드는구나. 신기하네.""술식이 복잡해보여." 이어지는 감상에 로미오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냥 ‘예쁘다’거나 ‘고맙다’는 말이었다면 평소처럼 으스대며 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
2026.10.26 -
ARCHIVE 밤의 항구
밤의 항구Romeo merrow X Spill Rute 밤의 솔트로우 항구는 낮보다 더 솔직했다. 크레인의 팔은 검은 하늘에 접힌 채 멈춰 있었고, 바닷물은 부두의 콘크리트 옆구리를 끈질기게 핥았다. 짠내에 젖은 바람이 창고 벽을 훑고 지나갈 때마다 녹슨 사슬과 계류 고리가 가볍게 울었다. 멀리 항만선 선로 쪽에서는 전차가 감속하는 금속성 마찰음이 한 번 길게 끌리더니, 곧 부두의 어둠 속으로 삼켜졌다. 로미오는 약속 시간보다 한참 일찍 도착해 있었다. 검은 방수 재킷 위로 벌워크용 보조 하네스를 걸쳤고, 손에는 길쭉한 장비 가방을 들고 있었다. 가방 안에는 복합 결계 모듈, 예비용 카린 패치, 수건 두 장, 당연히 필요 없을 리 없는 초콜릿까..
2026.10.26 -
ARCHIVE 예를 들면
예를 들면Romeo merrow X Spill Rute Romeo "For example?"(예를 들면?) 그는 그녀의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입꼬리가 천천히, 아주 오만한 곡선을 그리며 말려 올라갔다. 그래, 예시가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보여줄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가 마시던 딸기 라떼 잔 옆에 놓인 냅킨 한 장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녀의 입가로 가져가는 대신, 제 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말을 이었다.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Romeo "I'll show you things you can't see in a book. Things ..
2026.10.26 -
ARCHIVE 이름이 뭐라고
이름이 뭐라고Romeo merrow X Spill Rute Spill "그 말 세 번째로 했어.""로미오 군이랑 로미오랑 많이 다른 거야?" Romeo "많이 다르지. 완전."(A lot. Completely different.) 그는 곧장 받아쳤지만, 이번에는 목소리가 전처럼 날카롭게 튀지 않았다. 오히려 툭, 하고 떨어졌다. 억지로 세운 허세가 한 번쯤은 쉬어도 되는 자리라는 걸, 그 자신도 아주 잠깐 인정한 탓이었다. 그는 몸을 의자 등받이에서 떼어내고 팔꿈치를 테이블 끝에 걸쳤다. 붉은 눈이 찻잔이 아니라 맞은편의 얼굴 높이쯤에 머물렀다. ..
2026.10.26 -
ARCHIVE 참 이상한 사람이야
참 이상한 사람이야Romeo Merrow X Spll Rute 로미오는 그녀가 무엇을 고를지, 어떤 색에 마음을 빼앗길지 전혀 예측할 수 없었다. 그녀의 취향이라는 것은 그에게 완전히 미지의 영역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그저 그녀가 교복 외에 다른 옷이 없다는 것, 그리고 가끔 자신을 완전히 무력하게 만드는 말을 한다는 것 외에는. 그는 스필이 마침내 한 곳에 멈춰 서서, 짙은 남색의 코트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Romeo "That one? Seriously? It looks like something my grandfather would wear...
202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