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 않는 일Romeo merrow X Spill Rute 작은 손가락이 푸른 조개껍데기를 한 번 꾹 감싸 쥐었다가 느슨하게 풀렸다. 반박도 없었고 고개를 끄덕이는 동작도 없었다. 그저 살짝 들어 올린 가느다란 어깨 위로 로미오의 손에 들려 있던 회색 겉옷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연하늘색의 얇은 가디건 위로 묵직한 면직물이 포개지자, 밤바람에 가볍게 나부끼던 옷자락이 단숨에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스필은 아무 말도 덧붙이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리조트 별채로 향하는 나무 계단 쪽으로 먼저 발걸음을 옮겼다. 거절당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받아들여졌다. 아까 침실에서는 기어코 단추를 풀어 벗어 돌려주더니,..
2026.10.27그게 사실이라면, 그게 사실이라면 당신은 지금 나와 함께 살고있는 거야. 내가 당신을 기억하니까.
김보영, 당신에게 가고 있어
그런 생각을 하자니 떠오르는 곳이 있더라, 마지막 장소로는 거기가 좋을 것 같았어.
김보영,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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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묻지 않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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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VE 외로운 조개껍데기
외로운 조개껍데기Romeo merrow X Spill Rute 밀려오던 잔잔한 바닷물 한 줌이 허공으로 둥글게 떠올라 조개껍데기 표면을 깨끗하게 헹궈냈다. 이어서 바지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물기까지 꼼꼼하게 닦아낸 로미오는, 한결 선명해진 푸른빛 조개를 다시 스필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Romeo "Put them side by side on your desk, then. If the old one gets lonely by itself, that's on you."(그럼 책상 위에 두 개 나란히 올려 놔. 전에 준 거 혼자 둬서 외로워지면 네 책임이니까.) Spill ..
2026.10.27 -
ARCHIVE 그 7월에서_2
그 7월에서Romeo merrow X Spill Rute 로미오는 삼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정문 앞 난간에 팔을 걸치고 서서 동부선 방향의 길을 몇 번이고 내려다보았다. 오후의 열기는 아직 돌담에 눌어붙어 있었다. 담장 너머로는 방학을 맞아 짐을 끌고 나오는 학생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오늘 그는 교복을 입지 않았다. 소매를 두 번쯤 걷어붙인 짙은 남색 셔츠에 얇은 회색 겉옷, 그리고 어깨에는 작은 더플백 하나. 머리카락은 평소처럼 흐트러져 있었지만 어제 저녁 내내 거울 앞에서 골랐다는 사실은 아무도 물어보지 않았으면 했다. 여섯 시가 되기 삼 분 전, 담장 안쪽에서 익숙한 연분홍색이 보였다. ..
2026.10.27 -
ARCHIVE 그 7월에서_1
그 7월에서Romeo merrow X Spill Rute 6월의 마지막 두 주는 로미오가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흘러갔다. 부두제가 끝난 다음 날부터 대표팀 합동 훈련 일정표가 갱신되었다. 오전에는 벌워크 해안 구조 실습이 있었고 오후에는 팀 단위 연계 훈련이 잡혔으며 밤에는 전술 회의가 이어졌다. 수니바 케르는 그가 윈드워드 시절 버릇대로 혼자 앞서 나갈 때마다 훈련을 멈추고 똑같은 질문을 던졌다. 그래서 네 뒤에 누가 남았지, 머로. 대답을 못 하면 처음부터 다시였다. 방파제 끝에서 젖은 장갑을 벗어 던지며 욕을 삼킨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주말은 비워 둔다던 말은 첫 주 토요일에 이미 무너졌다. 올해 콩코던스 경기..
2026.10.27 -
ARCHIVE 광휘제와 부두제_잘 가(FIN.)
광휘제와 부두제_잘 가Romeo merrow X Spill Rute 벨하벤 중앙역에서 내려 순환선으로 갈아타고 루멘홀드가 자리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는 내내 여름밤의 공기는 제법 선선했다. 오늘 밤의 루멘홀드는 평소와 달랐다. 높이 솟은 고딕 양식의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마다 광휘제 무도회를 밝히는 화려한 금빛 조명이 새어 나왔고 멀리서 현악기 합주 소리가 바람을 타고 아련하게 흘러내렸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외부 귀빈들과 동문들이 정문 근처를 오가고 있었다. 무도회장 안에 있었으면 지금쯤 저 답답한 음악에 맞춰 서 있었겠지. 내 옆에서 생선 샌드위치나 먹고 낮잠이나 자는 대신에. 스필의 목덜미에서 가로등 불빛..
2026.10.27 -
ARCHIVE 광휘제와 부두제_내년에는(2)
광휘제와 부두제_내년에는Romeo merrow X Spill Rute 시선이 맞붙었다. 로미오가 상체를 숙인 덕에 많이 가까웠다. 배도 닻도 파도도 이제 갔다. 남은 건 사람뿐이었다. 뒤따르는 건 새로운 빛이다. 먼저 것이 가면 뒤엣 것이 온다. 다음으론 새와 별과 꽃다발이 하늘을 장식했다. Spill "응. 약속할게.""근데 안내는... 잘 못해. 감안해." 코끝이 스칠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어둠 속에서도 스필의 금안은 신기할 정도로 또렷하게 빛났고 그 안에 비친 자신의 붉은 눈동자가 바보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그동안은 언제나 자신이 먼저 일방적으로 날짜를 박고 끌고 다녔다...
2026.10.27 -
ARCHIVE 광휘제와 부두제_내년에는
광휘제와 부두제_내년에는Romeo merrow X Spill Rute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던 로미오의 등 뒤로, 멀리 제1부두 쪽에서 묵직한 뱃고동 소리가 길게 울려 퍼졌다. 곧이어 어두운 항구 하늘 위로 부두제의 밤 행사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첫 번째 축포가 파란 궤적을 그리며 솟구쳤다. 펑, 하는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밤하늘에 거대한 톱니바퀴와 나침반 모양의 광 마법 투영이 화려하게 펼쳐졌다. 개시제의 경건한 아홉 번째 형과는 전혀 다른, 솔트포드 학부생들이 보란 듯이 쏘아 올린 소란스럽고 역동적인 빛의 구조물이었다. 스필이 로미오에게 무언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조명 터지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
2026.10.27 -
ARCHIVE 광휘제와 부두제_밤바다가 뭐가 어려워
광휘제와 부두제_밤바다가 뭐가 어려워Romeo merrow X Spill Rute Spill "밤바다는 아무것도 안 보여서... 어려워." 방파제 끝 반원형 전망대에 발이 닿자 등 뒤의 축제 소음이 물먹은 솜처럼 둔탁하게 가라앉았다. 대신 발밑의 거친 현무암 테트라포드 사이로 검은 바닷물이 밀려들었다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발목 아래에서 낮게 울렸다. 축축한 소금기를 머금은 밤바람이 로미오의 노출된 팔뚝을 서늘하게 훑고 지나갔다. 손바닥 안에 잡힌 스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로미오는 스필의 시선이 맞잡은 손등에서 칠흑 같은 수평선으로 옮겨가는 것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바다..
2026.10.27 -
ARCHIVE 광휘제와 부두제_용혈석
광휘제와 부두제Romeo merrow X Spill Rute Spill "그렇네. 아마 그렇게 말했을 것 같아." 스필이 순순히 인정하며 고등어를 오물거리자 로미오의 어깨에서 빳빳한 날을 세우던 긴장이 빠졌다. 볼이 볼록해진 채 생선을 씹는 얼굴을 보니 아까 줄을 서서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Spill "로미오는 이 광물, ...뭔지 알고 사온 거야?" 이어진 질문에 로미오의 시선이 스필의 쇄골 위에서 붉게 반짝이는 구체 펜던트로 내려앉았다. 상시등의 주황빛 아래에서도 탁해지지 않고 유독 깊고 선명한 붉은빛을 머금은 돌이었다. 그..
2026.10.27